한 그릇의 밥/나희덕
집에 돌아와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금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지쳐
진밥처럼 풀이 죽은 아이들,
희고 고운 얼굴들이 형광등에 빛 바래고
조용히 밥그릇에 담겨
귀가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
빈 자리 몇 개, 누가 도망갔느냐고
윽박지르며 묻고 돌아서면
-- 몇 시간 일찍 간 게 왜 도망입니까
-- 무단외출 했다고 무기정학입니까
말없이 대답하는 눈동자들,
오늘은 가출한 두 아이를 찾아나섰다
어두운 레스또랑 구석, 오락실, 만화가게,
미성년자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여관 뒷골목들을 찾아다녔지만
거리 거리 찬바람만 불어오는 저녁
두 아이를 담고 있는 그릇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더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
내일이라도 두 아이가 돌아온다면
밥보다 반가운 아이들,
덥석 껴안고 감사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다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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