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월에 죽는다 / 이기철
시월은 반짝이는 유리조각으로 내 발등을 찌른다
아픈 사람이 더 아프고 울던 벌레가 더 길게 운다
시월엔 처음 밟는 길이 오래 전에 온 길 같고
나에겐 익숙한 작별들이 한 번 더 이별의 손을 흔든다
노랑 양산을 펴들고 있는 저 은행나무에게도
푸름은 연애였을 것이다
초록으로는 다 말 못한 사연
마침내 붉게붉게 태우고 싶을 것이다
아무도 귀뚜라미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을 때
벌레울음 아니면 누가 한 해를 몸으로 울 것인가
유독 나에게만 범람하는 가을엔 핏줄이 다 보이는 시를 읽고
정맥을 끊어 백지에 시를 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월에 죽는다
계간 『시와 세계』 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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