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우연 / 이운진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대가 만약 그라면
나는 지구의 속도로 걸어가겠어
시속 1674km의 걸음걸이에 신발은 자주 낡겠지만
지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사랑을 믿는
이 별의 아름다운 관습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단단한 국경선인 마음을 넘어
천 년 넘은 기둥처럼
그의 곁에 조용히 뒤꿈치를 내려놓는 일이야
눈부신 밤하늘의 정거장들을 지나
지구라는 플랫폼으로 그가 오면
풀잎이 새에게
호수가 안개에게
바위가 바람에게 했던 긴 애무를
맨발로 해 주겠어
첫 꿈을 깬 그대에게 적막이 필요하다면
돌의 침묵을 녹여
꽃잎 위에 집 한 채를 지어주겠어
그것으로 나의 정처를 삼고
한 사람과 오래오래 살아본 뒤에도
이름을 훼손하지 않겠어
지구에서의 전생前生을 잊지 않겠어
-『시인시각』(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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