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시락/곽기영
참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들려오는
서그럭 서그럭 항아리 속 긁는 소리
어머니는 그렇게
박 바가지에 한줌 보리쌀 꺼내고
황토 아궁이에 불 지펴지면
뒤꼍 굴뚝위엔 연기가 춤을 춘다.
무쇠 솥 뚜껑 사이로
푸시씩 보리 익는 내음 퍼지고
부엌 문턱위에 굴뚝새 날아들 때면
찬장에 숨겨둔 달걀 하나
기름때 묻은 작은 무쇠 솥 뚜껑위에서
하얀, 노란색으로 물들고 김치와 함께
엄마 표 삼총사 도시락이 완성된다.
사각보자기 한 귀퉁이
국어, 산수, 그리고 공책 위에 도시락 얹어
둘둘 말아 허리춤에 메고 달리고 달려
내 책상 위 보자기 풀어헤치니 김칫국물 흘러
공책 위가 흥건한들 대수냐며
교실 난로 위 엄마 공양탑 층층이 쌓이고
점심시간 가까워 오면 도시락도 타고
내 애간장도 탄다. 선생님 빨리 마쳐요.
등굣길 조용하던 도시락
하굣길에는 덜거덕 덜거덕
젓가락 숟가락이 아우성이다
닭 모이도 줘야하고
소꼴도 베어야 한다며 재촉한다.
지천명의 아들은 아직도
엄마의 도시락을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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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김용택, 안도현 시인 등이 참여한 한국대표서정시선집에 실린 곽기영 시인의 작품을 보면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져 세상과 사람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하는 서정성이 풍부하다. 찾아내어 밝히고 드러내는 곽기영 시인의 서정성은 자신의 삶이고 시일 것이다. 관계에 대한 추억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갈망이 담긴 <어머니의 도시락>은 가슴으로 읽혀지는 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자신을 받아 줄 어머니를 그리워해야 할 숙명적 존재인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충만한 어머니는 언제나 모든 것이 사랑이다.
이 시의 배경은 어머니인데 보리쌀, 아궁이, 달걀, 도시락, 김치, 교실, 선생님, 소꼴 등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것을 통해 인간의 정서와 사랑, 고향과 자연이 느껴진다. 호흡을 고르며 느껴야 할 마지막 부분 <지천명의 아들은 아직도/엄마의 도시락을 그리워합니다.>라는 조용하고 침착한 시인의 고백에는 인간 본연의 자세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인생을 제대로, 사람답게 살도록 가르쳐 주신 어머니를 그리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기본일 것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내 안의 세상을 담아내는 어머니가 그립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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