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잠시 허공중에 시선 두기/김현희

시인 최주식 2012. 1. 17. 00:37

 

잠시 허공중에 시선 두기/김현희

 

내가 너를 만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촘촘한

나를 비워내게 하기 위함이다

삶은 느슨하게 떠야한다, 느슨하게

털실을 엮는 대바늘 뜨게도

느슨하게 떠야 부드럽다

굵은 실은 더 느슨하게 떠야하고

보랏빛 털실도 여유로 포인트를 줘야 한다

허공중에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지 말자

아침에 일어나 밤이 되어 잠들 때까지

하물며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도

우주는 쉬는 일 없이

숨쉬고, 고민하고, 때론 노래하며

우리가 왜 살아야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나무와 새와 바람

또 그 무엇을 통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내가 너를 만나는 것은

너로 하여금

나를 비워내게 하기 위함이다

잠시 허공중에 시선 두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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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시인은 단정하고 소박한 언어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 계열의 시인이다. 시의 특징은 자아 인식의 치열성을 통해 한 차원 도약한 시적 역량을 발휘한다. “삶은 느슨하게 떠야한다, 느슨하게/(중략)/굵은 실은 더 느슨하게 떠야하고/보랏빛 털실도 여유로 포인트를 줘야 한다”에서 시인은 나를 비워내야 함을 “느슨/여유”라는 관계에서 통찰한다. 또한, 삶이란 이상(理想)과 현실 속에서 충돌하기 보다는 화해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새로운 정신을 창출할 자신만의 이상이 없다면 고립된 매너리즘에 빠질 수 밖에 없고, 발 딛고 선 현실을 부정한다면 나 또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만나는 것은/너로 하여금/나를 비워내게 하기 위함이다/잠시 허공중에 시선 두기 위함이다” 는 내가 인식하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허공에 시선을 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애자제한 경지이며,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비우는 것은 동시에 채우는 것, 세상사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내 마음까지 제 멋대로라면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고 내일의 좌표를 그려볼 일이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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