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설/오양임

시인 최주식 2012. 1. 26. 00:01

 

설/오양임

 

풍요의 찌꺼기를 줍다 떠난

남편의 손수레를 끌며

남루한 겨울을 가는 등 굽은 할미

 

발갛게 닳은 콧잔등 아래

끌고 끌리며 

굴러가는 모지랑이 바퀴는

고물상에 고단한 삶을 내려놓곤 하였다

 

시린 바람은 돌고 돌아

무르팍 속으로 기어들고

긴긴 세월 속에 쭉정이만 남아도

지친 몸을 녹이던 모심慕心

 

대지의 살갗마저 얼어붙은

섣달 그믐밤

몇 푼의 돈을 자리 밑에 깔고

할미는 눈과 귀를 문밖에 두었다

 

행여 어머니! 하고 들어올 것 만 같아

뜬눈으로 지새는데

몽니 바람만 창문을 두드리고

소리없이 할미의 등뼈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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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거대담론도 좋지만 아옹다옹 얽혀사는 사람의 아픔이나 구체적 관심이 요구되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도 소홀히 다루어선 안된다. 이 작품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수명 100세을 바라보는 이웃의 가려진 불안과 불확실성을 직접어법으로 담담하게 그려 내었는데 전체적으로 인간적 고뇌가 가득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목민처럼 부유하는 소외된 노년의 삶일지라도 무의미, 무용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긴긴 세월 속에 쭉정이만 남아도/지친 몸을 녹이던 모심>과 같이 더없이 고귀함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의 핵심은 답답한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이다. 손수레를 끌며 치열하게 살아있음에 <행여 어머니! 하고 들어올 것 만 같아/뜬눈으로 지새는데> 몽니 바람만 창문을 두드리니 언제쯤 웃음꽃 피는 빛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인가? 오양임 시인의 시는 쥐어짜는 시가 아니라 체온과 체취가 느껴지는 현실감이 무르녹아 있음이 장점이다. 그러기에 시속에 펼쳐진 풍경을 들여다보면 애절하거나 침통한 것 같으면서도 밝고 따뜻하고 친밀감이 넘친다.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품고 사는 오양임 시인의 시 세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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