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1
내 오늘
서울에 와
만 평(萬坪) 적막을 사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 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서벌(1939~2005)
서울은 한국 사회의 축도(縮圖)이자 상징이다. 중심의 힘은 세고 길었다. 서울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히고 안절부절못한 이들의 기억은 그런 때문일 게다. 거대한 겹겹의 벽과 냉혹한 생존의 전장(戰場)이 곧 서울 아니던가. 그 판에 뛰어들어 서울을 접수하는 이도 있지만, 변두리로 밀리며 연명하는 이들은 서울이라는 정글이 늘 무섭다.
그래서 그 모두가 못마땅한 시인도 적막이나 샀을 게다. 그것도 만 평이나! 무슨 억하심정처럼 흩고 막 뿌리고 싶은 순간, 주머니에선 벗의 명함이 또 약 올리듯 집힌다. 자기 명함이 분명 없을 바닥난 호주머니가 한없이 쓸쓸해지는 시간―. 문득 이즈음 명함들의 분분한 출현이 겹친다. 초등생도 명함을 만드는 시절이지만, 선거철 명함은 유독 씁쓸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인들은 명함을 애완하지 않는다. 작품이 곧 명함이니, 적막이나 결핍이나 만 평씩 거나하게 지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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