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오승철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오승철(1957~ )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오승철(1957~ )
5월이다. 잎샘이 아직 남았을지 모르지만, 설마 4월 같은 강풍 속 비가 또 치랴. 이제는 정녕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 신록(新綠)의 눈부신 나날이다. 어디든 바람나러 가고 싶을 정도로 햇살도 바람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이런 날 제주에서는 '셔?'('안에 계셔?'의 줄임말)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바람길을 헤집는다던가. 오름서부터 먼 바닷물을 머금은 바람이 밀려오면 올레마다 꽃답들이 올래올래 핀단다. 유채에서 장다리까지 꽃이랑 넘실대는 고삿마다 나직한 돌담을 돌아나가는 웃음들이 잡힐 듯이 환하다. 순금 같은 햇살 사이로 노란 꽃물결과 검은 현무암 숭숭 돌담과 푸르디 푸른 물빛이 제주만의 봄을 끊임없이 피워내는 곳. 거기 가면 눈부터 시원해져 마냥 걷고, 앉고, 살고 싶어진다. 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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