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어머니/김종상

시인 최주식 2012. 5. 31. 23:14

어머니/김종상

 

들로 가신 엄마 생각
책을 펼치면
책장은 그대로
푸른 보리밭

이 많은 이랑의
어디 만큼에
호미 들고 계실까
우리 엄마는

글자의 이랑을
눈길로 타면서
엄마가 김을 매듯
책을 읽으면

싱싱한 보리 숲
글줄 사이로
땀 젖은 흙냄새
엄마 목소리

―김종상(1935~ )

어린 시절 어머니한테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다. 달큼한 젖 냄새, 구수한 밥 냄새, 흙 냄새, 때로는 혼자 몰래 돌아앉아 흘리는 눈물 냄새도 났다. 그것은 모두 코끝이 찡해지는 사랑의 냄새였다. 이 동시를 쓴 시인의 시에 '누가 지었을까? 어머니란 이름, 부를수록 그립고 들을수록 정다운 어머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이지 어머니라는 이름은 부를수록 그립고, 들을수록 정다운 이름이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도 들로 가신 엄마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쯤 엄마는 보리밭 어디만큼 호미로 김을 매고 있을까. 허리가 아프다고 어제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는데 얼마나 허리가 아프실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엄마가 보리밭 이랑을 매듯 책을 읽으면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땀에 젖은 흙 냄새 나는 목소리, '아들아, 네가 있어 힘들어도 난 아무렇지 않다'. 보리밭의 보리처럼 싱싱한 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어머니의 땀에 젖은 흙 냄새와 눈물 냄새를 흠씬 맡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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