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산들 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최동호

시인 최주식 2012. 5. 31. 23:18

산들 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최동호

첫 새벽 시작한
학과 공부에 등뼈 비틀던 경판들도
학승들과 제 자리로 돌아간 다음

노스님네 게걸음
산보 어간에 대웅전 코끝을 까치가 간질러
튀밥처럼 희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

마당 귀퉁이에 폭포처럼 내려와
나무이파리 흔드는 산들바람과 함께
황금 햇살 펼치는 빗자루길 산보를 시작한다

―최동호(1948~  )

학승(學僧)들은 새벽에 일어나 경(經)을 외고 공부한다. 경 속에는 생명 희비(喜悲)의 궁극의 이치가 새벽빛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을 터이다. 하나 통 재미가 덜해 몸이 뒤틀린다. 부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들을 불러내는 것일까? 찾아온 시장기일까?

노승(老僧)도 어기적어기적 게걸음으로 안행(雁行)에 나선다. 햇살은 점점 부풀어 대웅전 처마 끝에서 폭포처럼 쏟아진다. 폭포는 돋는 나뭇잎마다 새것으로 반짝이니 경판 속 그 모든 말씀들이 바로 여기, 이 눈앞의 반짝임과 수런거림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재(自在)한 진리의 풍경이 수행자들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아름다운 상징 '빗자루길'! "물 뿌리고 마당 쓸 줄도 모르는 이들이 정사(政事)를 논하고 있다"는 남명(南冥) 선생의 일갈이 생각난다. 절마당의 빗질 자국이 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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