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풍경(風磬)/김제현

시인 최주식 2012. 6. 10. 22:34

풍경(風磬)

뎅그렁 바람 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김제현(1939~  )

/유재일
풍경(風磬)은 묘한 울림으로 가슴에 스민다.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정경을 담아내기 때문일까, 그 뜰 어딘가에서 홀로 솟는 샘물처럼 여운도 맑고 은은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구름소리, 목탁소리를 다 품어 오가는 마음을 길게 사로잡나 보다. 가정의 자그만 종들도 어쩌면 산사의 풍경과 운치에 대한 동경이리라.

그런데 풍경 속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적막도 산다. 풍경이 수시로 제 가슴을 치며 가만가만 울음을 흘려보내는 것은 그 때문인 게다. 그래서 바람이 지나치면 바람을 불러 기울이게 하고, 구름이 뭉그적거리면 구름을 앉혀 '뎅그렁 뎅그렁' 일러주는 게다. 그렇듯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라니, 산화(散花)의 통곡을 딛고 선 유월의 산하(山河)가 여기저기 아프게 스친다. 아직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깊은 아픔들을 생각하며 풍경의 위무를 새긴다.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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