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問喪) /정 선 주
은행나무 그 아래 낡은 구두 한 켤레
행길을 뒤로 한 채 돌아선 늙은 마음
마을을 지나 온 저녁비가 소슬히 덮고 있다.
살아서 걸어 온 길 죄다 끊어 버리고
뿌리 위에 기대고 누운 편안한 저 침묵
성소(聖所)에 발길 옮기듯 생각이 깊어 있다.
하늘로만 솟구치던 노오란 은행잎도
젖어 있는 돌담길을 조등처럼 밝힌다
상주도 문상객도 없는 한 생의 뒷모습.
바람이 불 때마다 지워지는 몸을 끌고
눅눅한 신발들은 버스를 타고 떠나지만
수묵의 저문 가을 속, 들국 향기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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