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새와 수면/이정환

시인 최주식 2012. 8. 10. 22:27

/유재일

새와 수면/이정환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의 새 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이정환(1954~  )

일파만파(一波萬波)가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한 마리 새가 유유히 앉아 있다 문득 솟을 때의 파란처럼. 새는 그저 강물을 차고 솟아오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잠시나마 앉아 있던 물자리를 찢어 던지며 차고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공이 돌연 팽팽해지고, 강물도 저리 온몸으로 요동을 치는 게다. 그 소란은 수만 파랑을 일으키며 퍼져간다.

그새 새 알이라도 낳은 것일까. 혹은 잠자던 물의 알들이 일순간 깨어나 비상하는 것일까. 퍼덕거리며 일제히 날개를 펴는 물결이 모두 새가 된다. 그렇게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 새 떼가 저마다 허공을 열며 솟아오른다. 허공을 찢는 파열음이 천지에 가득하다. 치솟는 게 물이건 새이건 무슨 상관이랴. 시(詩)도 저렇게 품은 게 있으면 무수한 물결을 끌고 도약하는 것! 한 소식 같은 파열음이 수면에 은비늘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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