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잠/정두리
턱 받치고
오그리며 자다가 움찔,
그러다 다시 잔다
―얘, 제대로 누워 자라
좀만 자고 일어나야지
아직 숙제가 남았어
불편한 잠자리
불안한 샛잠
그래도 잠이 온다
고양이처럼 온다
―정두리(1947~ )
학교 다니던 시절엔 왜 그리 숙제가 많았던지, 그리고 왜 그리 숙제가 하기 싫었던지 모르겠다. 산수 예습문제 풀이에서 국어 낱말 풀이까지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숙제를 하다 보면 잠이 밀려왔다. 그래서 이 동시처럼 "좀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깐 잔다는 게 그만 꼬박 잠이 들어 부랴부랴 아침에 숙제를 서둘러 끝내기도 했다. 그때 숙제장 위에 자다가 흘린 침자국은 지금도 내 기억 어딘가에 흐릿한 자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밀려오는 잠을 참으며 숙제를 하던 그 '참음과 견딤'의 시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닐는지. "아직 숙제가 남았어"처럼 우리 인생에서 해야 할 숙제가 얼마나 많은가. 밀린 숙제를 하기 위해 고양이처럼 둥글게 웅크리고 불편하고 불안한 잠을 자야 할 날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을 견디며 숙제를 하고 나면 아침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창문을 냉큼 넘어가서 해를 덥석 물어올 고양이처럼 활기찬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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