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황지우
여름 동안 창가 紫薇꽃이 붉게 코팅한 통유리;
잘못 들어온 말벌 한 마리가
유리 스크린을 요란하게 맴돈다
환영에 鐵날개를 때리며
어? 여기가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無明盡亦無無明盡*
바깥을 보는 것까지는 할 수가 있지,
허나, 바깥으로 한번 나가보시지
아아, 울고 싶어라; 투명한 것 가지고는 안 돼
그해 겨울, 그 통유리창에 눈보라 몰려올 때
나, 깨당 벗고 달려나가
흰 벌떼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황지우(1952~ )
*무명진 역무무명진: ‘반야심경’의 구절을 응용한 것으로 ‘어리석음(無明)이 다하고 또한 어리석음이 다할 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라는 뜻으로 해석됨.
매에 쫓기던 꿩이 시골집 유리창에 부딪혀 즉사하는 것을 본 적 있다. 적(敵)에 대해서, 덫에 대해서, 사기(詐欺)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유리막을 해놓고 자미꽃의 찬란을 보여준다면 죽을둥 살둥 덤비는 것이 어디 말벌뿐이랴. 알겠으나 좀처럼 가 닿을 수 없는 나라가 있으니, 그 안타까움은 어떻게 할까.
슬슬 유리 스크린이 내려온다. '겨울의 환(幻)'이라고 해도 되리라. 대선(大選)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들은 말벌의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 이번 겨울 눈보라 속에 달려나가 사라지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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