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천일염/윤금초

시인 최주식 2012. 8. 10. 22:35

천일염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

우리 손깍지 끼었던 그 바닷가
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

―윤금초(1943~  )

/유재일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 속이다. 햇볕에 성냥을 대면 불이 일 것만 같다. 쨍쨍쨍 쇳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장마 뒤 얼마간은 이렇게 순도 높은 불볕의 세례를 견뎌야 한다. 그 속을 뚫고 다니느라 모두 혀를 내두르지만, 불볕이 유독 반가운 이들도 있다. 소금 농사에는 더없는 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고품질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다.

천일염은 물과 바람, 뜨거운 볕만으로 만들어낸다. 수확 적기를 맞은 창고마다 소금들이 눈부시게 쌓이고 있다. 오로지 말리고 말려 남을 것만 남은 결정체! 천일염은 햇볕의 흰 알갱이 같다. 바람과 바닷물의 쓰라린 눈물 같다. 그렇게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에 가 닿는 사랑이라면, 더욱이 절명시(絶命詩) 쓰듯 하는 사랑이라면, 그야말로 천일염 같은 천연기념물 사랑이 아닐까. 바다로 훌훌 떠나는 이즈음, 뜻밖의 사랑도 발생한다. 그 모두 더도 덜도 말고 다만 천일염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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