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수도의 유람선이 말했다/장영수
벚꽃 만발한 사월이라는 것이 왠지 조금은
언짢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나, 유람선은
부두를 떠나간다 울긋불긋 승객들을 싣고서
나, 유람선은 뱃길 따라 남해 바다를 가른다
일단의 여유 한가로움에 잠긴 이들 혹은
멀리서 온 듯도 싶은 이들을 흔들어주면서
나, 유람선 주변 물거품들은 쉴 새 없이
포말 지는데 갑판의 어떤 사람들은 술들을
마신다 혹은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안내양이 음악을 틀면 아래층 공연장에선
승객들이 몸을 부딪혀가며 춤들을 춘다
다리가 다 풀릴 때까지라도 저러는건 지금
여기가 동네나 집 아닌 나, 유람선의 품속인
때문인가 사실은 거기가 도로 거길 텐데
착각들이 때때로 아름답고 안쓰럽구나
여하튼 누구든지 좀더 먼 바다로 나가보고
싶어지는 어느 날이 있어 오늘 마침 그대는
오래된 뱃길 어디쯤에 있었다 그렇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뱃길은 영원한 성지였다
그렇다고 옛 충무공님 때문에 새삼 눈시울
적시진 않아도 물론 괜찮다
어쨋든 그대는 오늘 나, 유람선의 갑판
어느 모퉁이에 있었다 그대 생명의 원천이
애초에 아주 작은 물 조각 하나였던 것처럼
그대는 오늘따라 옛날의 그 하나의 물 조각이
된 것처럼 망망한 바다 위에 있었다 현실감각 쪽
도금이 조금은 벗겨진 모습으로 있었다
장영수의 시집 『그가 말했다』에서.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드와인/고미경 (0) | 2012.10.22 |
---|---|
쓸쓸해서 머나먼/최승자 (0) | 2012.10.12 |
다시 누군가를/김재진 (0) | 2012.09.14 |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이외수 (0) | 2012.09.10 |
태백에서 칼국수를 먹다/우대식 (0) | 201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