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와인/고미경
심장이 지구본처럼 기울어지는 날들이에요
혼자 술 붓는 밤이면 나는 밀바의 목소리에서
서랍 속의 바다를 꺼내보다가 먼 지중해까지 흘러가요
올리브나무 우거진 숲으로 가지 못한
나의 새가 혼자 울고 있어요
나목의 꼭지점에 앉아 날카롭게 울어요
추운 별들이 숲으로 흘러들어 가는 밤
곱아서 오그라진 새의 날개에 화덕불을 쬐어주듯
나는 밀바의 노래를 들려줘요
올리브 숲을 향해 날아가는 꿈을 꾸며
밤을 견디는 새
기울어진 서랍 속 바다가
붉게 출렁거릴 때
세상의 꼭지점에서
새는 소스라치듯 날아올라요
―《문예연구》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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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경 / 1964년 충남 보령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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