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전라도
보성
벌교
저 갯벌이 종교다
날름
날름
주워 먹는
꼬막은 구휼금이고
널배가
넓은 신전을
헌금도 없이
지나간다
―변현상(1960~ )
바야흐로 꼬막철이다. 입맛부터 다셔지는 겨울 꼬막! 대체 벌교는 졸깃졸깃 맛깔나고 영양가 높은 꼬막들을 어느 틈에 다 키웠는가. 어느 품에 다 어르고 길러 한없이 내주는가. 여름 땡볕에, 가을 서늘볕에 속속들이 맛이 든 갯꽃 같은 꼬막들! 그런 벌교 꼬막만 보면 기가 탁 막히던 소설 '태백산맥'의 한 대목이 또 스친다. 꼬막에 빗댄 그 묘한 묘사 때문에 얼굴을 붉혀가며 읽던 한국 현대사의 통과의례 소설에서도 벌교는 아주 큰 삶의 무대였다.
'종교'라는 말에 끄덕여짐은 그런 때문일까. '날름/ 날름' 주워 먹는다는 생동감에 '구휼금'이라는 전언까지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현장이다. '넓은 신전을/ 헌금도 없이' 지나지만 널배들은 쉬 지나치기 힘든 오체투지(五體投地)다. 노을을 등지고 나오는 벌교 어머니들의 진흙덩이 저녁을 밀레의 만종(晩鍾)에 비하랴. 그런 진흙 배밀이 덕에 우리는 진흙이 키워내는 최상의 꼬막을 즐긴다. 아, 올해도 이슥한 겨울 주막에서는 꼬막 까는 소리깨나 높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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