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만큼만
장다리 밭에 꼬물꼬물
배추벌레가 자란다고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먹을 만큼 꼭 그만큼만
배추벌레를 물어 가는 새들
언덕마다 푸른 풀이 자란다고
있는 대로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앉은 자리만큼 꼭 그만큼만
풀을 뜯어 먹는 소들
새들이 남겨 놓은
장다리 밭의 배추벌레가
어느 새 흰나비가 되었구나
노랑나비가 되었구나
소들이 남겨 놓은
언덕 위의 풀들이
어느 새 흰꽃을 피웠구나
노랑꽃을 피웠구나
―민현숙(1958~ )
자연이 때로는 사람보다 더 지혜로울 때가 있다. 제가 먹을 만큼 먹는 새들이나 제가 앉은 자리만큼 먹는 소들에게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남겨 놓은 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동시를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꼭 그만큼만 바라고 갖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꼭 그만큼만'을 지킨다는 것은 참 힘들다. 정도에 넘치게 욕심을 내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한꺼번에 있는 대로 취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남겨 놓는다면 세상은 훈훈해질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흰나비가 되고 노랑꽃으로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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