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겨울 편지/김일연

시인 최주식 2012. 12. 23. 22:39

겨울 편지

 

소설(小雪)입니다 설핏한,
마음에 눈이 옵니다

무릎을 꺾듯이
급기야 폭설이 오고

나무가 쓰러집니다
산이 무너집니다

용서라는 말씀도
이처럼 한없을까요

나뉘어간 길과 길들
처음으로 돌아와

말없이 합쳐지는 한때를
당신에게 부칩니다

 

―김일연(1955~ )

서울에 첫눈이 날렸다. 대관령엔 조금 쌓였다고―. 그러고 보니 소설(小雪)이 다가온다. 첫눈 소식에 설렐 새도 없이 겨울로 들어선 것이다. 올겨울은 혹한(酷寒) 예고가 심상치 않다. 지레 날을 벼리는 바람 소리부터 범상치가 않다. 문틈이라도 단단히 여며야 겨울을 날 텐데, 둘러보면 낡은 집부터 마음까지 온갖 틈으로 숭숭하다.

뒤숭숭한 날은 편지라도 좀 써야겠다. 따뜻한 차를 올리듯, 움츠러든 마음을 눅여줄 글이라도 나눠야겠다. 아, 그러는 중에 눈은 또 올 것이고, 급기야 폭설이 오기도 할 것이다. 서 있는 것들의 무릎을 꺾듯 설국(雪國)을 길게 펼쳐 놓는 날도 있을 것이다.

눈꽃 세상에서는 마음의 각(角)도 스러지며 좀 더 평평해지리. 그렇게 용서라는 말처럼 눈이 한없이 나리면, '말없이 합쳐지는 한때를' 당신에게 부칠 수 있을까. 하면서 보니 곧 소설입니다, 설핏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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