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공탄
조심조심
양손에 구공탄 들고
허리도 못 펴고
살금살금 걷는다
뒤따라오던 동생이
또 한 번 건드리자
화는 나도 구공탄은
사알짝 내려놓고
도망가는 동생을
오빠는 쫓아간다
바람 찬 저녁 길에
구공탄 두 개
―박홍근(1919~2006)
겨울이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첩처럼 '구공탄'이라는 동시를 꺼내 읽는다. 이 동시를 읽으면 구공탄의 불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때 우리 서민들의 겨울 벗이었던 구공탄은 아련한 추억의 땔감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고 구공탄이라 불리던 연탄을 들여다 쌓아놓았다.
양손에 구공탄을 들고 행여 깨질세라 허리도 못 펴고 살금살금 걷는 아이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뒤따라오던 동생이 무슨 심술이 났는지 건드리자 화는 나도 구공탄이 깨질까 봐 사알짝 내려놓고 동생을 쫓아가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스럽다. 내 동심의 추억 속엔 바람 찬 저녁 길에 구공탄 두 개가 아직도 남아 있어 겨울이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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