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반추(反芻) 외4편
1) 되새김질
장윤우
태여날 때부터 머슴꾼이다
늦가을 수소라서
어깨가 더욱 휘어지도록
70여년을 일해오면서 늙어가는 소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소만
태형(笞刑)으로 감으며
인생을 되새김질할 따름이다.
커다란 눈망울에 맺히는
높은 하늘 구름 한번 처다보고
이런 굴곡(屈曲)의 인생이라해도
그 이상을 감사하며 그만큼 마음을 비우며
조금씩 먹고 조심스레 생각하고
마즈막 먼 길을 바라서
멍에를 질 일뿐이다
2) 뚜벅이 반추(反芻)
장윤우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살다가
먹은 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히 되씹으며
마즈막 살 한조각, 뼈 한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숫소의 숙명(宿命)이다.
3)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전에
장윤우
넘치는 강줄기처럼
그리운 이가 그리워지기전에
나는 흐르네, 흘러야 하네
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인가.
까칠한 낙엽으로 메말라가는 심성(心性)으로
이 해가 져물면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병든 잎새처럼, 이마음도 시들어가고-
그리운 이여,
두고 온 고향도 없지만
괜스리 그려보다 마는 뒷산과
기인 들판과 맛닿은 공활(空豁)한 거기-
흩어지고 마는 바람으로 가야하리-.
4)피곤한 일상(日常)
시 / 장윤우
그런 하루가 또 하루를 잉태(孕胎)한다든가,
이젠 “내일”에 대한
혹은 “어제”에 대한 저항-
미련도 기대도 없었던 걸로 치자
좌우,전후를 살필 겨를도 없었지 않은가
쫓고 쫓기는 피곤한 일상(日常),
좁은 골목길로 돌아와 옷을 벗고 먹고 보고,
뒤숭숭한 잠자리에서도
엎치락, 뒷치락, 선잠으로 엷어지는 일상이다.
늘 회의(懷疑)하다마는
구겨기만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5)무심(無心)의 물가
장윤우
청주땅에 들어서면
밤늦게 소주(燒酒)가 달다
깜박이는 불빛,
붉은 포장마차를 에워싸고
서울, 충주, 진천, 객지(客地)에서 올라온
건장한 젊음들이 전혀 낯설지 않네,
술자랑에, 노래자랑도 어울리고
개천물 위에 뜬 달도
안주거리로 서로 다른 꿈을 건진다네.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재미1,2,3/ 문태준 (0) | 2013.04.17 |
---|---|
성묘(省墓) / 장윤우 (성신여대명예교수.시인) (0) | 2013.04.03 |
물 만드는 여자 /문정희 (0) | 2012.12.26 |
고속도로 / 김기택 (0) | 2012.11.25 |
직소폭포/안도현 (0) | 201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