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뚜벅이 반추(反芻) 외4편 /장윤우

시인 최주식 2013. 4. 3. 23:44

뚜벅이 반추(反芻) 외4편

 

1) 되새김질

 

                                           장윤우

태여날 때부터 머슴꾼이다

늦가을 수소라서

어깨가 더욱 휘어지도록

70여년을 일해오면서 늙어가는 소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소만

태형(笞刑)으로 감으며

인생을 되새김질할 따름이다.

커다란 눈망울에 맺히는

높은 하늘 구름 한번 처다보고

이런 굴곡(屈曲)의 인생이라해도

그 이상을 감사하며 그만큼 마음을 비우며

조금씩 먹고 조심스레 생각하고

마즈막 먼 길을 바라서

멍에를 질 일뿐이다

 

2) 뚜벅이 반추(反芻)

 

                                                  장윤우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살다가

먹은 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히 되씹으며

마즈막 살 한조각, 뼈 한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숫소의 숙명(宿命)이다.

 

3)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전에

     장윤우

넘치는 강줄기처럼

그리운 이가 그리워지기전에

나는 흐르네, 흘러야 하네

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인가.

까칠한 낙엽으로 메말라가는 심성(心性)으로

이 해가 져물면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병든 잎새처럼, 이마음도 시들어가고-

그리운 이여,

두고 온 고향도 없지만

괜스리 그려보다 마는 뒷산과

기인 들판과 맛닿은 공활(空豁)한 거기-

흩어지고 마는 바람으로 가야하리-.

 

4)피곤한 일상(日常)

시 / 장윤우

그런 하루가 또 하루를 잉태(孕胎)한다든가,

이젠 “내일”에 대한

혹은 “어제”에 대한 저항-

미련도 기대도 없었던 걸로 치자

좌우,전후를 살필 겨를도 없었지 않은가

쫓고 쫓기는 피곤한 일상(日常),

좁은 골목길로 돌아와 옷을 벗고 먹고 보고,

뒤숭숭한 잠자리에서도

엎치락, 뒷치락, 선잠으로 엷어지는 일상이다.

늘 회의(懷疑)하다마는

구겨기만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5)무심(無心)의 물가

                                               장윤우

청주땅에 들어서면

밤늦게 소주(燒酒)가 달다

깜박이는 불빛,

붉은 포장마차를 에워싸고

서울, 충주, 진천, 객지(客地)에서 올라온

건장한 젊음들이 전혀 낯설지 않네,

술자랑에, 노래자랑도 어울리고

개천물 위에 뜬 달도

안주거리로 서로 다른 꿈을 건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