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병든 서울-오장환

시인 최주식 2014. 2. 26. 23:01

병든 서울/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상아탑 창간호, 1945.12)

 


                * 구루마 : 짐수레. 달구지.

                * 구융 : ‘구유’의 사투리로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나무 그릇.

 

 

<감상의 길잡이>

 오장환은 일제 말기에 붓을 꺾지 않으면서도 친일의 길을 걷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초기시에서 보여 주었던 유교적 인습에 대한 부정과 반항의 세계가, 해방 이후에는 이 시에서 보듯, 새 시대에 대한 전망과 기대의 이미지로 발전되어 나타나게 된다. 신장병으로 인해 8․15 해방을 병상에서 맞은 오장환은, 광복의 감격과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의 울분과 좌절을 이 시를 통해 ‘병든 서울’이라는 상징어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인 ‘나’로 대치된 시인이 8월 15일 병원에서 운 것은 단순히 기쁨 때문이 아니라, ‘탕아로 /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해서였다고 믿었지만, 하루가 지난 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는 실로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날마다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던 네거리의 ‘병든 서울’은 단지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무슨 본부, 무슨 본부 /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렇다. 병든 서울아 /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 아 다정한 서울아 /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라며 울부짖는다. 식민지 치하에서 ‘나’가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그저 술 먹고 돌아치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너도 나도 잡놈일 뿐이어서 서울은 오히려 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어제까지 황군(皇軍) 위문 공연을 다니던 문학인들이 오늘은 너도 나도 민족문학을 부르짖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정당을 구성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버린 해방 정국은 이미 그가 꿈에 그리던 그러한 마음 속 고향이 아니었다.

 

 그의 이상은 ‘아, 인민의 이름으로 되는 새 나라’의 건설이건만,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병원에서 뛰쳐나와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과 함께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어느새 서울엔 다시금 ‘술취한 망종’이 다시 들끓고 있을 뿐이다. 잠시 동안 해방의 감격에 취해 있었던 그는 이제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과 ‘젊은이의 씩씩한 꿈들’을 보고 싶어서,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까지 다시금 반항할 것을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그는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눈을 뽑아 버리고,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쓸개를 내팽개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해방 정국의 감격과 울분을 노래하는 이 시는 이러한 격정이 호흡을 적절히 가다듬게 하는 선동적인 리듬감과 조화를 이루어, 거칠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내면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