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바람속을 걷는 법/이정하

시인 최주식 2020. 3. 6. 09:16

바람 속을 걷는 법 1 / 이정하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바람 속을 걷는 법 2 / 이정하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ㅡㅡㅡㅡㅡㅡㅡㅡ

바람 속을 걷는 법 3 / 이정하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지, 하고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땐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 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ㅡㅡㅡㅡㅡㅡㅡㅡ

바람 속을 걷는 법 4 / 이정하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오는

그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

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바람 속을 걷는 법5 / 이정하

어디 내 생에 바람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곤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

몰아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혜쳐 나가라는 뜻이다

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

한 판 붙어보라는 뜻이다

살다보니 바람 아닌게 없더라

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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