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우체국 / 박성우 이팝나무 우체국 / 박성우 이팝나무 아래 우체국이 있다 빨강 우체통 세우고 우체국을 낸 건 나지만 이팝나무 우체국의 주인은 닭이다 부리를 쪼아 소인을 찍는 일이며 뙤똥뙤똥 편지 배달을 나가는 일이며 파닥파닥 한 소식 걷어 오는 일이며 닭들은 종일 우체국 일로 분주하다 이팝나무 우체국 우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갈비뼈가 부러진 포옹 / 이성이 갈비뼈가 부러진 포옹 / 이성이 아파서 오랜만에 복지관 갔단다 보통때는 참 점잖던 김씨 할아버지가 반갑다고 냅다 안았다 여러 사람 보는데 겁도 없이 꽈악 안았는데 박수소리도 좋았는데 늙은 얼굴 볼고족족해지려는데 우두둑- 그리고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갈비뼈가 두 개 나간 것인데 하루 지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무화과나무 / 박만진 무화과나무 / 박만진 무화과나무에 혹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도깨비들이 저 혹을 정말 좋아하는지 개구쟁이 동네 꼬마둥이들이 실성한 비렁뱅이인 줄 알고 몇 차례나 돌멩이질을 해댔는지 넓은 앞마당 정원을 두고 짐짓 뒤란에서 춤을 추는지 모질고 사나운 시어머니 잔소리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개정판 수학용어사전 / 추종욱 개정판 수학용어사전 / 추종욱 1. 루트 외삼촌은 정수리가 평평한 엄마 머리를 놀려댔다 수학 책을 펼칠 때마다 엄마를 루트라 생각했다 루트가 가진 수식들을 풀어 본다 엄마는 해발이 높은 둥지에서 자식들이 풀어내는 미지수도 다 감싸 주느라 루트의 생은 늘 제곱근 값으로 풀어지는 주름뿐이다 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직방 / 김선태 직방 / 김선태 홍어 낚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홍어 수컷을 낚는 데야 홍어 암컷을 미끼로 쓰면 직방이지요 갓 잡은 암컷을 실로 묶어 도로 바닷물 속에 집어넣으면 수컷이 암컷의 아랫도리에 착, 달라붙어 얌전히 따라 올라오지요 대롱 모양의 수컷 거시기는 두 개인데 희한하게 가시들이 촘촘 박..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조장(鳥葬) / 김선태 조장(鳥葬) / 김선태 티베트 드넓은 평원에 가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가마우지 바다 / 천수호 가마우지 바다 / 천수호 짧고 어두운 순간이 휙, 지나갔다 가마우지 그림자다 내 머리 위를 스쳐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동안, 새는 내 그림자 한쪽을 찢어다가 그의 머리 위에 툭 떨어뜨린다 쭈뼛 솟구치는 머리카락, 가마우지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금새 캄캄해진다 다시 새는 그의 몸 안쪽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매화민박의 평상 / 백상웅 매화민박의 평상 / 백상웅 네모난 짐승이 매화나무 그늘을 등에 업고 기어간다 부러진 한쪽 다리를 벽돌로 괴고도 절뚝이지 않는다 발바닥이 젖어 곰팡이가 피었는데 박박 긁지 않고 마당에 네 개의 발자국을 천천히 찍고 있다 나도 짐승의 널따란 등에 그늘보다 무겁게 엎드린다 짐승은 매화나무 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웃음 부의(賻儀) / 조성국 웃음 부의(賻儀) / 조성국 잘 익은 복숭앗빛 같이 뺨 붉던 세침떼기 고 계집애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속에 들어와선 한 번도 빠져나간 적이 없는 고 계집애, 아비가 돌아가셨다 위친계모임에서나 잠깐 엿들은 풋정의 얼굴이 떠오르자 조문 가는 길이 설레었다 몇 십 년만큼의 애틋함이 콱 밀려와서는 영..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가죽 가방 / 김해자 가죽 가방 / 김해자 자궁을 들어냈다, 고 말하는 여자의 웃음에서 만져지는 비릿한 핏덩어리 슬픔은 이렇듯 형이하학적이다 나이 먹을수록 여자의 복부는 부풀어갔다 봉분처럼 동그랗게 솟아오른 허리 아래, 여자는 뭐든 쑤셔넣기에 안성맞춤인 가방을 숨기고 다녔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도 우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