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꽃 / 문신 빗방울 꽃 / 문신 남쪽에서 길을 놓치고 민박집에 들다 늦게까지 불 켜두고 축척지도의 들길을 더듬다 쩌렁쩌렁 난데없는 소리에 억장 무너지다 알고 보니 민박집 양철 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니, 야음을 틈타 양철 지붕에 꽃잎 피어나는 소리 꽃잎 자리에 얹힌 허공이 앗 뜨거라, 후닥닥 비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7
토요일 밤 스타벅스에서 / 김박은경 토요일 밤 스타벅스에서 / 김박은경 L은 커피를 마셨다 쇼윈도에 박힌 투명한 사이렌의 노랫소리 카페라떼 카페모카 카푸치노 그리고 비린내, 오후 늦게 국지성 호우가 예상됩니다 기상캐스터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어 구름을 모았다 티슈 같은 구름은 찢기지 않고 풀어져 내렸다 잠드는 게 무섭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7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 김박은경 당신의 코트 빛으로 얼굴은 물들어 버린 채 / 김박은경 당신 생각을 또 했지 당신이 점점 커졌지 방문을 열 수 없었지 팔꿈치가 문에 걸릴까봐 정수리가 전등에 닿을까봐 창을 열 수 없었지 누군가 알아챌까봐 그 틈에 창밖으로 당신 발가락이라도 빠져 나갈까봐 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지 당신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7
제주에서 어멍이라는 말은 / 정일근 제주에서 어멍이라는 말은 / 정일근 따뜻한 말이 식지않고 춥고 세찬 바람을 건너가기 위해 제주에선 말에 짤랑짤랑 울리는 방울을 단다 가령 제주에서 어멍이라는 말이 그렇다 몇 발짝 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어머니라는 말에 어멍이라는 말의 방울을 달면 돌담을 넘어 올레를 달려 바람을 건너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7
때죽꽃 / 송수권 때죽꽃 / 송수권 때 거르지 말라고 올해도 때죽꽃이 피었어요. 옷소매를 툭 치고 떨어지는 꽃잎과 꽃잎 사이 미끄러지는 여보란 말, 참 좋지요. 눈물나게 옆구리를 쿡 찌르는 말, 한 숟갈씩 떠먹고 싶은 말, 당신이란 말보다는 이무러워* 아슴하지 않아 좋네요. 미운 정 고운 정, 덕지덕지 때묻어 지층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7
生 / 이시영 生 / 이시영 찬 여물목을 은빛 피라미떼 새끼들이 분주히 거슬러 오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등에 아픈 반점들이 찍혀 있다. 겨울처럼 짙푸른 오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힘 / 조정 힘 / 조정 일주문 날다가 하늘에 부닥친 새가 안 보이는 모서리를 보려고 눈썹을 모으고 섰다 서서 새도 날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 등으로 하늘을 받치고 서서 생똥을 눈다 고요한 전 기별 없이 찾아온 우환에 밀려 여자는 절을 멈추지 못하고 신음이 치마폭에 떨어져 마룻장으로 미끄러져 살아 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낫이나 잘 갈어 / 윤제림 낫이나 잘 갈어 / 윤제림 침만 삼키면 뭘혀 낫이나 잘 갈어 촌은 촌이고 도횐 도회여 힘으로 낫 가는 거 아니드키 힘으로 되는 일 을매 웂어 요즘 샥시들이 힘으로 된댜 그라구 농삿군덜 힘이래야 땅심인디 자넨 변변한 땅뙈기도 웂잖여 안 되는 건 안 되는 겨 촌은 촌이고 도횐 도회여 낫이나 잘 갈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달맞이꽃 / 이홍섭 달맞이꽃 / 이홍섭 한 아이가 돌을 던져 놓고 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 돌 같던 첫사랑도 저러했으리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왔거나 그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못했다 시집 <숨결> 현대문학북스. 2002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
월식 / 최금진 월식 / 최금진 1.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업고 신작로에 서 있었다. 커다란 달이 아버지 머리통을 삼키고 있었다. 짚가마니 썩은 냄새가 났다. 미루나무 아래 한 여자가 누워있었다. 아버지 검은 뒤통수에 대고 나는 물었다. 저기, 죽은 여자는 언제 부활할까요. 아버지가 고개를 홱 돌리셨다. 아버지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