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玉水)역―박시하 (1972∼ ) 옥수(玉水)역―박시하 (1972∼ ) 사랑해, 공중 역사 아래 공중에게 고백을 하려다 만다 군고구마 통에 때늦은 불 지피는 할머니가 내가 버린 고백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이 허망한 봄날 겨울을 견딘 묵은 사과들이 소쿠리에 담겨 서로 껴안고 있다 또 다른 출발을 꿈꾸는 걸까? 아직 붉다 역.. 행복한시읽기 2013.04.26
순창고추장―이인철(1961∼ ) 순창고추장―이인철(1961∼ ) 이슬을 닦고 장독뚜껑 열면 곰삭고 있는 해 하나 저렇게 붉으면 저렇게 뜨거우면 사랑처럼 단내가 풍풍 나는구나 강천산 단풍보다 더 싱싱한 색이 돋는구나 섬진강 한 굽이의 샘물 냄새 물씬 물씬 솟구쳐 오르고 양푼에 곰삭은 해 한 수저 떠넣고 붉은 밥을 .. 행복한시읽기 2013.04.26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성기완(1967∼ )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성기완(1967∼ )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다던 당신이떠난그곳이어딘지 알수없어 매우멀어바다같아요 당신이남겨놓으신흔적들 파도에씻긴조가비같은것들 함께바다에여행갔을때당신이 무릎접고고개숙이고줍던 그시간이 매우멀어바다같아요 당신이나를버린.. 행복한시읽기 2013.04.26
귀에는 세상 것들이―이성복(1952∼ ) 귀에는 세상 것들이―이성복(1952∼ ) 귀에는 세상 것들이 가득하여 구르는 홍방울새 소리 못 듣겠네 아하, 못 듣겠네 자지러지는 저 홍방울새 소리 나는 못 듣겠네 귀에는 흐리고 흐린 날 개가 짖고 그가 가면서 팔로 노를 저어도 내 그를 부르지 못하네 내 그를 붙잡지 못하네 아하, 자지.. 행복한시읽기 2013.04.26
버티는 삶―박상우 (1963∼ ) 버티는 삶―박상우 (1963∼ ) 사막과 황무지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나의 세계 갈증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 잔의 물만, 허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한 움큼의 먹이만 있으면 되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디 섬이라고 믿으면 되느니, 그런 삶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햇빛이 닿지 않.. 행복한시읽기 2013.04.26
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신용목 (1974∼ ) 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신용목 (1974∼ ) 저녁이 하늘을 기울여, 거품 바다 그득 한 잔이다. 속에서부터, 모든 말은 붉다. 불길 몸으로 휘는 파도의 혀. 돌아와 한 주전자 수돗물을 받았다. 이 위로, 몇 척의 배가 지나갔을까. 불에 올렸다. 리듬이 탄력 있게 넘어가는 시다. .. 행복한시읽기 2013.04.26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이창기 (1959∼ )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이창기 (1959∼ ) 한 사나흘 깊은 몸살을 앓다 며칠 참았던 담배를 사러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전거를 겨우 일으켜 세운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데 웬 여인이 불쑥 나타나 양조간장 한 병을 사오란다 깻잎장아찌를 담가야 한다고 잘 있거라 처녀애들 젖가슴.. 행복한시읽기 2013.04.26
풍경(風磬)―이태수 (1947∼ ) 풍경(風磬)―이태수 (1947∼ ) 바람은 풍경을 흔들어 댑니다 풍경 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 행복한시읽기 2013.04.26
푸르른 날―서정주 (1915∼2000) 푸르른 날―서정주 (1915∼200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 행복한시읽기 2013.04.26
매우 드라이한 출산기―성미정(1967∼ ) 매우 드라이한 출산기―성미정(1967∼ ) 닥터 박 왜 자꾸 항문 끝에 힘을 주라는 거요 내 지금 비록 네 발 달린 짐승이 되어 침대 위를 기고 있지만 이곳은 분명 산부인과의 분만실이오 그런데 자꾸 항문 끝에 힘을 주라니 날보고 지금 똥을 낳으라는 말이오 똥 아닌 것을 낳으라는 말이오 .. 행복한시읽기 201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