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것들―유하 (1963∼ ) 겨우 존재하는 것들―유하 (1963∼ ) 여기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쑥국 먹고 체해 죽은 귀신 울음의 쑥국새, 농약을 이기며 물 위를 걸어가는 소금쟁이, 주인을 들에 방목하고 저 홀로 늙어가는 흑염소, 사향 냄새로 들풀을 물들이며 날아오는 사향제비나비, 빈 돼지우리 옆에 피어난 .. 행복한시읽기 2013.04.15
도감에 없는 벌레 ―신동옥 (1977∼ ) 도감에 없는 벌레 ―신동옥 (1977∼ ) 옛 애인에게 받은 속옷을 셔츠를 입고 옛 애인에게 받은 바지를 입고 나선다 옛 애인에게 받은 안개를 바람을 입고 옛 애인에게 받은 황사를 입고 나선다 변절기(變節期), 잿빛 웃음으로 낱장의 표정을 여미다 살갗을 떠나는 각질에 지는 꽃잎 하나씩.. 행복한시읽기 2013.04.15
여름의 수반―이용임 (1976∼ ) 여름의 수반―이용임 (1976∼ ) 서성이는 육체 나리우는 육체 맴도는 육체 묽어지는 육체 붉어지는 육체 환하게 사라지는 육체 입김으로 흩어지는 육체 한 점으로 떠 있는 육체 가장자리가 흔들리는 육체 바람을 가둔 육체 거울이 되는 육체 눈 위에 손을 올리고 기다리는 육체 그림자에 .. 행복한시읽기 2013.04.15
소만(小滿) ―나희덕 (1966∼ ) 소만(小滿) ―나희덕 (1966∼ )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 행복한시읽기 2013.04.15
지울 수 없는 노래―4·19혁명 21주년 기념시 지울 수 없는 노래―4·19혁명 21주년 기념시 김정환 (1954∼ ) 불현듯, 미친듯이 솟아나는 이름들은 있다 빗속에서 포장도로 위에서 온몸이 젖은 채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던 시절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죽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부활이라고 했다 불러도 외쳐 불러도 그것.. 행복한시읽기 2013.04.15
무쇠 솥―장석남 (1965∼ ) 무쇠 솥―장석남 (1965∼ ) 양평 길 주방기구종합백화점 수만 종류 그릇의 다정한 반짝임과 축제들 속에서 무쇠 솥을 사 몰고 왔다 -꽃처럼 무거웠다 솔로 썩썩 닦아 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다 푸푸푸푸 밥물이 끓어 밥 냄새가 피어오르고 잦아든다 그사이 먼 조상들이 줄줄이 방문.. 행복한시읽기 2013.04.08
통박꽃―박경희 (1974∼ ) 통박꽃―박경희 (1974∼ ) 박 중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박은 바가지로도 쓸 수 없고 죽도 뜰 수 없는 통박! 쪽박도 면박도 통박에 비하면 깨진 박 축에도 못 끼는데 마흔이 다 된 게 밥물도 맞출 줄 모르느냐고 고두밥도 모자라 쌀이 씹힌다고 국수는 오래 삶아야 속까지 익지 예산 국수 공.. 행복한시읽기 2013.04.08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 나의 작은 밤 안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행복한시읽기 2013.04.08
기러기―김태형 (1970∼ ) 기러기―김태형 (1970∼ ) 이제 막 도착한 듯 한시름 놓아 날고 있는 기러기떼를 올려다봅니다 한 해에만도 일만 킬로미터쯤 날아간다지요 아마 그들이 날아온 그 뒤쪽이 아득합니다 살아갈 힘을 다해 우랄 산맥을 두고 온 그쪽 하늘은 그러니까 내겐 헤아릴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 옛날 .. 행복한시읽기 2013.04.08
세상 끝의 봄―김병호 (1971∼ ) 세상 끝의 봄―김병호 (1971∼ )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 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행복한시읽기 201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