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 한광구(1944~ )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몸은 모두 내어 주고
한 줄기 힘줄만을 말리어
가늘고 단단하게
꼬고 또 꼬고
벼루고 또 벼루어
휘어지지 않는 신념으로
꼿꼿이 일어서
정수리에
청정하게
구멍을 뚫어
하늘과 통하는
길을 여는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너무 많은 구멍을 파려 하지 않았는지. 파고 뚫다 막히면 ‘이게 아닌데’ 하며 그만둔 빈 구멍들만 휑하게 초라하지 않은지. 그래 예부터 한 구멍만 파라 했거늘.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욕심인가 미련인가, 이 구멍 저 구멍 파는 일은. 아, 이 초라한 계절, 이제 다 비우고 나 먼저 감읍(感泣)하며 하늘도 감동시킬 한 구멍 파는 일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을. <이경철·문학평론가>
'詩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숙(露宿)’-김사인(1955~ ) (0) | 2009.12.15 |
---|---|
탑’ -김창균(1966~ ) (0) | 2009.12.15 |
충무로 골뱅이’-방남수(1957∼ ) (0) | 2009.12.11 |
아니다’의 주정(酒酊)” - 신동문(1927~1993) (0) | 2009.12.10 |
초록별’ - 오세영(1942~ ) (0) | 200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