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바늘’ - 한광구(1944~ )

시인 최주식 2009. 12. 15. 23:52

바늘’ - 한광구(1944~ )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몸은 모두 내어 주고

한 줄기 힘줄만을 말리어

가늘고 단단하게

꼬고 또 꼬고

벼루고 또 벼루어

휘어지지 않는 신념으로

꼿꼿이 일어서

정수리에

청정하게

구멍을 뚫어

하늘과 통하는

길을 여는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너무 많은 구멍을 파려 하지 않았는지. 파고 뚫다 막히면 ‘이게 아닌데’ 하며 그만둔 빈 구멍들만 휑하게 초라하지 않은지. 그래 예부터 한 구멍만 파라 했거늘.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욕심인가 미련인가, 이 구멍 저 구멍 파는 일은. 아, 이 초라한 계절, 이제 다 비우고 나 먼저 감읍(感泣)하며 하늘도 감동시킬 한 구멍 파는 일로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을.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