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露宿)’-김사인(1955~ )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은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마음이 몸 부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 몸이 마음 부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 마음과 몸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건 생의 좋은 날 호사스러운 생각이었나 보다. 낯선 땅 후미진 구석 헌 신문지 같은 비참의 절정, 한세월 버텨온 영육(靈肉)의 이 한갓진 독백 듣고 있노라면.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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