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아니다’의 주정(酒酊)” - 신동문(1927~1993)

시인 최주식 2009. 12. 10. 22:02

아니다’의 주정(酒酊)” - 신동문(1927~1993)

 

 

아아 난 취했다

명동에서 취했다

종로에서 취했다

취했다 아아 그러나

이런 것이 아니다

세상은 참말로 이런 것이 아니다

사상?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다

철학?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다

(중략)

싼 술 몇 잔의

주정 속에선

아니다 아니다의

노래라도 하지만

맑은 생시의

속 깊은 슬픔은

어떻게 무엇으로

어떻게 달래나

나는 취했다

명동에서 취했다

종로에서 취했다

나는

나는

이런 것이 아니다


하늘 먹먹해지더니 눈발 휘날리고 세월은 자꾸 세밑으로 흐르고. 이런 날 펑펑 울고라도 싶은데 값싸게 그럴 수는 없고. 누구라도 같을 처지 주붕(酒朋) 불러내 술로 풀어내고 돌아가는 길. ‘아니지, 아니다’란 말만 처벅처벅 따라오나니. 아, 그러나 술 깬 아침 맑은 생시의 속 깊은 슬픔은 어떻게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 건가.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