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소풍 / 윤일현
진작에 귀띔이나 하였으면
뒷집 청송댁에서
쌀 한 되는 꿨을텐데......
닭들만 퍼덕이는 이른 새벽
죽 끓이다 홀로 마당에 서서
소풍 간다는 말 차마 못해
전날 밤 자기 전에서야 말을 꺼낸
어린 나의 조숙함을 안스러워 하며
흐르는 눈물 훔치며 하늘을 볼 때
쌀알 같이 촘촘한 새벽 별들은
메말라 평지가 된 당신의 젖가슴에
총알처럼 비수처럼 내려와 박히고
당신은 서럽게 서럽게 우셨습니다
끓는 죽에서 쌀알 건져
숯불에 졸여 밥처럼 만들어
백철 도시락에 꼭꼭 눌러담고
고구마 두 개,감 세 개
밤늦게 마련한 말표 사이다 한 병
보자기에 싸는 당신의 눈에선
피보다 진한 눈물 한없이 흘러내려
앞마당에 붉게 핀 맨드라미
더욱 검 붉게 물들였습니다
삽짝문 나서는 철부지에게
십원짜리 하나 꼭 쥐어주며
잘 놀다 오너라 나직이 당부할 때
툇마루
밑 복실이도 쪼르르 뛰어나와
어머니 치마 물고 꼬리치며 까불대고
붉게 물든 앞산이 치맛자락 날리며
너울너울 춤추며 우리집으로 내려와서
나의 손을 꼬옥 잡고 어서 데려 갔습니다
강굽이 내려다 보이는 검단동 산마루
보물찾기 노래자랑 정신없이 놀다가
소풍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바위꾼
빙빙도는 나무원판 위 닭털달린 작은 화살로
일 원 주고 꽂아보고 일 원 주고 또 꽂아보고
한푼도 남김없이 십 원 다 날려도
그 날은 그렇게도 즐거웠습니다
저물도록 놀다가 돌아오는 방천길
저 멀리 뚝다리 위에서 나를 기다리며
노을에 젖어있던 당신의 모습
강물과 함께 세월은 흘러가도
당신의 모습 당신의 눈물
내 가슴 속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겁니다
[윤일현 시집 "낙동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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