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사랑법 1 / 박진환

시인 최주식 2010. 1. 14. 23:35

사랑법 1 / 박진환


  가령 우리가 달리 먹고 사는 것이 있다면 나는
  시를 먹고 아내는 성경을 먹고 산다. 그러나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먹은 만큼 코피로 쏟아내고
  아내는 먹는 만큼 사랑의 살이 찌는 모양이다.
  나는 가끔 아내를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하고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믿는 터다. 내가 먹고 사는
  시 속엔 고뇌가 있고 아내가 먹고 사는 성경 속엔
  사랑이 있다. 고로 나는 고뇌를 먹고 아내는
  사랑을 먹는 셈이다. 다같이 달리 먹고 사는 법을
  알고 있으나 나와 아내가 다른 점은 굳이 내가
  고뇌를 택한 점이고, 사랑이라 믿고 있는 점이다.
  아내는 이를 착각이라고 믿고 아내의 착각을
  착각이라고 다시 믿는 내가 딱할 따름이다.
  아내와 나는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또다른
  울타리를 치고 각기 사는 법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부부이면서 부부로 느껴지지 않는 때는
  바로 이러한 때다. 기실 우리는 당초 남남이었듯이
  지금도 남남 이상일 수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서로 알고 미안해 하고 그렇다고 미워하거나
  나무라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기 따라서는 빛깔도, 모양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전혀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이를 익히
  알고 있는 듯 싶고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체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 법, 그것을 아직은 잘 모른다.
  아는 것은 달리 먹고 사는 법을 사랑으로 알고
  사랑한 만큼 코피를 쏟는다는 사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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