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가정 - 박목월(1916~1978)

시인 최주식 2010. 1. 23. 19:34

가정 - 박목월(1916~1978)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중략)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19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19문반, 6문3. 신발의 길이를 문수(文數)로 부르던 시절. 운동화라도 한 켤레 새로 사면 닳을세라 가슴에 꼬옥 품고 잤던 춥고 배고픈 시대 있었다. 단칸방에 딸린 자식만 아홉, 구름에 달 가듯 한 시인도 ‘아니’라고 거듭 내치고 싶은 굴욕적인 삶 있었나 보다. 가장으로서, 오늘의 아버지들 또한 이리 서럽고 안쓰러운 굴욕으로 따뜻한 가정 이루고 있겠거늘.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