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수영동 푸조나무 / 손택수 (시인)
500여년 "聖樹" 숱한 곡절 품고 인간 위무
나무는 성자(聖子)다. 나는 나무를 보면 성 프란체스코나 성 테레사 수녀님처럼 그를 성인품에 올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자주 안달이 난다. 사실 나무만큼 오랫동안 조용히 피 흘리며 숨져간 순교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심장 모양을 한 나뭇잎과 콩팥 모양을 한 나뭇잎을 보면 그들은 모두 장기기증자들인 것 같다. 봄마다 새로 돋는 이파리의 부활은 이적 중의 이적인 것 같다. 오늘도 도끼날 톱날에 무참히 쓰러져가는 나무들. 이 땅의 어떤 박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수난사를 나이테 무늬로 품고 있는 나무들. 그들을 성인품에 올려주면 이 세상 모든 곳은 아마 성지가 될 것이다. 나무 한 그루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참배를 드릴 수 있는 성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무들을 혼자서 성자라고 부른다. 성 가문비, 성 노간주, 성 고로쇠…. 세상엔 이렇게 많은 성스러움이 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타박하지 마라. 우리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수영동 푸조나무는 오백 살이 훨씬 넘도록 장수를 하고 있는 나무다. 그가 싹을 내밀지 못하고 씨앗 상태로 있었던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생은 그보다 더 오래일 것이다.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연대기처럼 푸조나무에게선 함부로 침범치 못할 어떤 신비가 엿보인다. 대기오염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서 도심에선 잘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교통 요충지 부근에 있다는 것 자체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그에게선 우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 목신 판과 같은 위용이 느껴진다. 반은 인간이었고 반은 양(羊)이었던 판처럼 푸조나무 역시 반은 식물이고 반은 짐승인 것 같다. 식물성과 동물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울퉁불퉁 우람하게 불거져나온 근육질의 알통들과 힘차게 뻗어오른 줄기들이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들쑥날쑥 변화가 심한 우듬지 끝으로부터 지표면까지 물경 18m의 키에 가지가 퍼지면 동서로 23m,남북으로 19m의 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노거수의 위용이 가히 상상 속 거인족을 떠올린다 하겠다.
푸조나무의 범상치 않은 기품은 사람들에 얽힌 그의 내력에서 더 돋보인다. 수영 사람들은 예부터 정월보름이면 한 해의 무사안녕을 비는 동제를 그에게서 40m쯤 떨어진 자리에 세워진 서낭당에서 올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서낭당은 송(宋)씨 할매당으로도 불리는데,사람들은 성 속에 나무를 품었던 서낭 할미의 넋이 푸조나무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다는 믿음을 오랫동안 지녀왔다. 이 얘기를 단순히 "전설 따라 삼천리" 식의 흥밋거리로만 폄하해버릴 것인가. 사람이 죽어 한 점 흙과 먼지가 되어 나무의 양분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과 나무의 결합은 결코 헛된 전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진실을 품고 있다 하겠다. 나무에 사람의 넋이 깃들었다는 것은 사람에게도 나무의 넋이 깃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필이면 송(宋)씨 할매다. 애초에 나무와 인간은 그렇게 서로 내통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마을의 당산목과 지신목으로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그가 한없이 드높은 자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푸조나무는 높이 솟아오르면서도 가지를 우산살처럼 땅으로 축 늘어뜨리는 특성을 가졌다. 겉모습처럼 그는 우듬지 끝의 하늘을 지향하면서도 뿌리를 내린 땅을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임진란 때 경상좌수사가 야반도주를 하자 목숨을 걸고 유격전을 벌인 25의용군을 응원했고,수영의 군졸이었던 안용복 장군이 일본의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 받고 왔을 때는 함께 기뻐했다. 바닷가에서 멸치잡이 후리소리가 칭칭 들려올 때(좌수영어방놀이)는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흥을 돋구었고,탈을 쓰고 나온 반인반수 영노가 타락한 양반을 잡아먹을 때(수영들놀음)는 나뭇잎을 부딪치며 사람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수많은 내란과 외침을 겪으며 사람들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는 그의 품으로 불러들여 푹신한 그늘방석을 만들어 주었다. 실향과 실업과 실연의 나날을 어찌하지 못하고 슬퍼하고 있을 때는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다감다정한 위무의 노래로 들려주었다.
나무는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나이테를 그리며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가는 삶을 말없이 보여준다. 이 세상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다. 구부러지고 휘어진 가지와 줄기는 그에게도 그만큼 곡절이 많았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그는 구부러짐으로써 시련을 껴안고, 휘어짐으로써 탄력을 얻는다. 적정의 스트레스는 그에겐 훌륭한 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 강인함과 유연성으로 푸조나무는 지난 세월 동안 이 땅의 곳곳에 자식을 퍼뜨렸다. 개 중의 몇몇은 남해 어느 외딴섬으로 가서 일가를 이루었고, 또 몇몇은 드물게 삼팔선 철책을 넘어가서 뿌리를 내렸다. 씨앗들을 실어다 준 새들의 전언에 따르면 분가한 자식들 역시 어미 못지않게 훌륭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다. 더러는 가슴 아픈 사연이 들려오기도 한다. 한참 더 자라야 할 나이에 땔감이 돼버린 나무와 오염된 대기를 견디지 못하고 요절한 나무 얘기를 들을 때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 푸조나무는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땔감이 되었으면 온기가 되어 인간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을 거라고,오염된 대기에 말라죽었으면 그만큼 맑은 공기를 세상에 씨앗처럼 뿌려놓고 갔을 거라고.
한 그루의 성스러운 푸조나무가 내 굳어버린 어깨 위에 그늘을 떨어트렸다. 가을이라 많이 말랐지만 그래도 아직은 적당히 물기어린 그늘이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흔들며 가만히 파문져왔다. 이 파문을 누구에게 전할까. 아픈 영혼을 치유하듯 잔잔히 번져오는 이 파문으로 누구를 송두리째 흔들어 줄 수 있을까. 그에게 이 번짐이 닿는다면 그도 하나의 파문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로 번져갈 것이었다. 파문은 파문을 일으키며 악수를 나누는 손가락끝 지문처럼 너와 나를 넘나들 것이었다. 나는 못물 위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게로 오는 나뭇잎 하나를 두 눈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파문, 그것은 나무가 내게 꺼내 보인 그의 나이테였다. 도끼와 톱날을 쓰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나무의 역사였다. 내 발바닥과 가마꼭지 끝에도 그와 같은 나이테 문양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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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동 푸조나무
천연기념물 311호 1982.11.04 지정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271
찾아가는 길
부산시내에서 해운대로 가다가 수영강을 건너기 전 수영로타리 근처에서 내린다. 수영공원을 찾아가야 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유서 깊은 수영성이 있던 이 곳을 택시기사는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아는 이가 드물다. '수영팔도시장'이나 '수영파출소'를 물어보는 것이 빠르다. 공원은 파출소 옆에 있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초행길에 자가용을 가져갔다가는 고생문이 훤하니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나무는 수영성 남문 바로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270호 곰솔에서 50m 쯤 떨어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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