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은 절, 화암사(花巖寺) / 안도현 (시인)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당시만 해도 화암사를 찾아가는 길은 반듯하지 않았다. 전주에서 대둔산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 근방에서 오른쪽으로 꺾는 길을 찾는 것도 몇 차례 두리번거려봐야 가능한 일. 그러고도 작은 마을과 논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사람살이의 나지막한 풍경들을 다 살펴보고 난 뒤에 찾아오라는 듯 화암사는 그렇게 꼭꼭 숨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암사로 가는 길. 4월, 좁다란 숲길 한쪽에 가도 가도 얼레지 꽃이 지천이었다. 바람난 처녀처럼 꽃잎을 까뒤집은 꽃. 그들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절 구경하러 산을 올라가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때는 길이 뚝 끊기고 계곡이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막혔다 싶으면 외나무다리가 길을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마을을 지나올 때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만큼 걷다가 보면 이번에는 벼랑이 턱하니 발길을 가로막는다. 벼랑에다 세운 철제 다리를 타고 올라와야 화엄사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절을 만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니! 문득 화암사가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고 지은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 입구에 있을 법한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이 경내로 들어서려면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잊을 수 없다. 세월에 닳은 문턱을 처음 넘어설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외갓집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ㅁ자형 구조를 가진 경내로 들어가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여염집의 편안한 안마당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때의 적막은 또 얼마나 큰 위안인가.
전에는 거기에 두 마리의 흰둥이가 살았는데 지금도 그 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녀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녀석들은 뒷산 다람쥐가 도토리 굴리는 소리까지 훤히 다 듣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쌩 하니 달려갔다가 소득 없이 터덜터덜 돌아오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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