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 이민아
무제치늪* 골짜기에 사나흘 내린 눈을
늦도록 기다리다 삽으로 밀어낸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 한 삽 한 삽 떠낸 눈
걷다가 밟힌 눈은 얼음이 되고 말아
숨소리 들려올까 생땅까지 찧어본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번쩍이는 불꽃들
성글게 기워낸 길 간신히 닿으려나
내밀한 빙판 걷고 먼 설원 헤쳐가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쩌엉 쩡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 부호
마침내 도려낸 상처 한땀 한땀 기워낸다
*무제치늪 :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습원(高層濕原). 6천여 년 전 생성됐으며 지금도 수많은 습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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