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겨울, 벨소리외 1편 / 김효선
겨울이었고, 문득 방으로 새가 날아들었고, 창밖엔 눈이 쌓이지 않고 휘파람만 불어대는 바람이 있었고, 형체도 없는 눈사람이 바람을 맞고 있었고, 퇴근길마다 좇아오는 목소리가 있었고, 싸락눈만 내리는 겨울이었고 겨울이었고, 지상에 발붙이지 못한 아쉬움이 떠도는 하늘이 있었고, 구두 안에서 징징 발가락들이 보도블록을 꼬드겼고, 부재중 메시지처럼 간간이 내 영혼은 비어 있었고, 가끔씩 엉덩방아를 찧었고, 돌아보면 눈사람도 없는데 새가 눈사람 안에서 흔적도 없이 죽어갔고, 더욱 거칠게 울어대며 슬픔이 녹아 흐르는, 언제나 그 길을 지나 겨울 대문 앞, 늘 내 안의 초인종을 눌러대는, 당신.
내가 음지陰地 였을 때 / 김효선
내가 음지식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해는 길어 숲을 그득 채운다.
제기랄,
넌 절대 꽃을 피울 수 없어.
꽃이 피기도 전에 모가지를 뚝뚝 분질러놓는 일쯤이야.
얼굴 위로 벌레들 기어오른다.
언제쯤 스멀스멀 슬픔도 쥐며느리처럼 둥글게 말아 올릴 수 있을까.
죽음은 이빨로 덥석 베어 물어도 잘리지 않는,
틈,
때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는,
누군가 마흔은 음지라고 말하더군.
가로수들도 저들끼리 연애를 하고
초경의 비릿함이나 끈적함은 사라진 지 오래,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는지
날마다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습기를 만들어 내는.
그늘의 마흔,
시집 <서른 다섯 개의 삐걱거림> 2008 황금알
김효선 시인
1972년 제주도 모슬포에서 태어남
2004년 <리토피아> 로 등단
2008 년 시집 <서른 다섯 개의 삐걱거림> 황금알
다층문학 동인. 제주문인협회 회원
현 KBS 제주방송총국 편성제작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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