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오늘 거멍이가 죽었다 외 1편 / 최종천

시인 최주식 2010. 1. 28. 21:53

오늘 거멍이가 죽었다 외 1편  / 최종천


올해가 모차르트가 죽은 지 250 주년이라고
그를 추모하며 그의 음악을 듣자고 한다.
오늘은 모차르트만 죽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누구보다 우리 공장에서 기르는 간절한 눈빛의
거멍이가 죽은 날이다
건너 공장의 수컷을 만나러 가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나는 모차르트보다 거멍이를 추모하리라
누구는 “죽음은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 죽음은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는
개구멍을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많다
정문보다 개구멍을 통하여 드나드는 자들은
성공을 보장받게 된다
개에게는 개구멍이 없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모차르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의무이다
인간은 누구나 모차르트의 피조물이다

 

나는 자신의 피조물이다 고로,
나는 거멍이를 추모하고자 한다
모차르트는 듣다가 꺼 버릴 수 있지만
거멍이의 짖는 소리는 꺼지지 않는다
거멍이가 꺼버려야 비로소 꺼진다
헛것인 나를 짖어주던 거멍이의 눈동자가
하늘에 떠 있다,  별이다

 

도마뱀의 꼬리 / 최종천


내 친구중의 한 놈은 자동차 사고로 뻗었다
또 다른 놈은 빚쟁이에게 당했다
목숨이란 마지막의 것
잘해야 본전인 것
나는 빚쟁이에게 불어 가는
내 살덩이를 떼어 줄 수는 없다
도마뱀을 보라
그 놈은 벌써 목숨이 거래의 대상이라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내 손을 빠져나간 놈의 칼자국이
도마뱀의 꼬리모양을 하고 있다
가끔 가렵다
여차하면 도마뱀의 꼬리는 떼어버릴 수가 있지만
이것을 어찌한다?
마음이 켕기는 날이면 가끔
쥐고 있는 주먹 속에서 파닥거리는
이놈이 나는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놈이 未收金한 나의 인생을
잔고 0에 저축하고 싶다


 <현대시학> 2월호 신작소시집에서

 

 


                                                                   최종천 시인

 


1954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02년 시집 <눈물은 푸르다> 시와시학사

2007년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