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메추리알 / 문정

시인 최주식 2010. 1. 28. 21:55

메추리알 / 문정

 

플라스틱 소쿠리에 메추리알이 몇 개 담겨있다

 

껍데기 얼룩 사이에 울긋불긋 정원을 그려 넣으며
나는 메추리알 하나를 집어들었다
송곳으로 알의 노른자와 흰자를 뽑아내려다가
나는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내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있는 몽고반점이 들썩였다

 

메추리는 알을 층층이 뱃속에 품고
사육장 그물막 바깥으로 지나가던 먹장구름과
짓궂은 저녁 눈보라와 빛깔과
꽃가루 날리는 허공의 향기를 잊지 않으려고
꼭꼭 다짐하듯 둥근 알의 표면에 얼룩을 그려 넣었을까

 

내 엉덩이의 몽고반점 속에서 
벌판을 또각또각 두드려나가는 말발굽소리가 울려나온다
벌판의 풀들이 이파리를 죽 펼쳐 파닥이고
나는 벌판 끝을 풀씨처럼 뚫고 나가 바깥바람을 탄 것 같았는데
내 손이 다시 플라스틱 소쿠리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메추리알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을까?
알록달록한 달이 땅에다가 벌판을 죽죽 그려나가고 있다

 

2008 '신춘문예 당선집'에서

 

 

문정 시인


1961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전주 우석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