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농사 외 1편/ 고인숙
어설픈 농사꾼 되어
작년엔 약 안치고 손으로 청벌레 잡느라
날마다 배추밭 서성거리고
병나자 득달같이 종묘사로 달려갔지요
백일 맞는 아가처럼 벙실벙실 잘도 벌던
배추가 그만 손이 너무 타 오갈병 들고 말았지요
올해는 벌레가 기어도 모른 척, 메뚜기나 잡고
목초액 막걸리 섞어 두어 번 뿌리고는
데면데면 배추 고랑 피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요
너희 들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거지, 내가 키울 수 있니
하늘이 알아서 비 뿌리고, 이슬 내리고
나는 헛골을 괭이로 슬슬 긁으며 무심한 척 바라만 보았더랬죠
노오란 고갱이 앉을 무렵
작년엔 너무 헐겁게 묶어 속이 안찼나
좀 조이게 묶어 주었더니
때 아닌 늦더위에 그만 속이 물크러진 게 반이나 되네요
맘대로 되는 농사
이 세상에 하나도 없지요
남새밭 연가 / 고인숙
앉은뱅이 가지는 치마폭에 조롱조롱 매단 새끼들을 자랑하고
참나무 삭정이에 어깨를 묶었던 방울토마토는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받침대를 쓰러뜨렸다
그것이 우스운지 어린 새댁 상추는 야실 야실 손바닥을 흔들고
쑥갓은 자기와 무관타며 고개를 쑥대머리로 흔든다
돌 틈에 선 익모초가 한 여름 땡볕을 익히며
누구 때문에 길모퉁이 남새밭을 지키고 있는가 비장하게 떠들고 있다
야, 조용!
새 댁 온 다
시집 <모래의 날들> 2008 모아드림
고인숙 시인
전북 군산 출생
2002년 <동강문학>으로 등단
2008 년 시집 <모래의 날들> 모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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