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미지에 대하여 / 김나영
내 본명은 점숙이다
누가 점숙아! 하고 부르면
쥐에게도 새에게도 들켜버릴까 봐
얼굴 확! 달아오르는 이름이다
초가집 부뚜막에 뒤집어놓은 간장종지 같은 이름이다
지금은 나영이란 필명을 주로 쓰고 살지만
어쩌다 내 본명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나영이란 이름과 점숙이란 이름
그 간극에서 봉숭아 씨방 터지듯 팟! 웃는다
어떤 사람은 내 이름이 전설의 고향이나
예전에 방영하던 TV문학관에 등장하던 그런 이름이라고
그것도 주인공도 아닌 점순이라고 그리 대충 부르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기역과 니은 그 받침 하나의 뉘앙스가 얼마나 다른데
점례, 쌍자, 순덕, 말순, 봉자, 언년,....
세련된 이름들 다 놔두고 어찌 그리 민망하게들 지어놨는지
임신한, 김봉지, 김벌레, 이사철, 오백원, 이성기,...
이름 하나 바뀐다고 본질이 뭐 크게 달라지겠나 싶겠냐만
말의 결과 이미지가 나를 사육하고 있다
나는 이미지의 포로다
거울 속의 내가 때때로 낯설게 보이는 것은
점숙과 나영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굴절하기 때문이다
계간 <시작> 봄호
김나영 시인 1998년 6월 <예술세계> 신인상 등단 계간문예 <다층> 편집동인 2006년 시집<왼손의 쓸모>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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