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詩창작 강의 / 박제영

시인 최주식 2010. 1. 28. 21:59

詩창작 강의 / 박제영

 

  제1강

 

   말들의 껍질을 부숴라 감각의 비계를 파내버려라 삼라만상의 뉘앙스와 리듬을 몸이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모두 발가벗고 서로의 눈과 귀와 혀의 구석구석 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한 번도 닿지 못했던 감각의 뿌리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제2강

 

  상상하라 중력을 이긴 물이 나무의 정점을 오르듯, 뜨거운 쇳물이 상상의 절정으로 차오를 때까지, 더 상상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스스로 육화(肉化) 할 때까지

 

  우리는 미친 것처럼 홀린 것처럼 춤을 추었다 우리는 모두 물과 불과 흙과 공기가 되어 마침내 텅 빈 우주를 떠다녔다

 

  제3강

 

  명사 20~24개, 동사 24~30개, 부사 10~12개, 형용사는 가급적 넣지 않는 게 좋지만 경우에 따라 3~6개, 그리고 숙성 발효시킨 생각 24그램과 그늘에서 2주 이상 건조시킨 감정 12그램을 준비할 것

 

  명사, 동사, 부사를 숙성 발효시킨 생각 12그램과 함께 섞어 볼에 넣고 중탕으로 열을 가하며 휘핑한다. 거품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면서, 온도가 36.5℃가 될 때까지 계속 휘핑한다. 36.5℃가 되면 숙성 발효시킨 생각 나머지 12그램을 넣고, 중탕에서 내려 열이 식을 때까지 휘핑을 계속한다. 그 다음에 온도가 5℃ 아래로 떨어지면 그늘에서 건조시킨 감정 12그램을 넣고 거품이 단단해질 때까지 휘핑을 계속한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거품이 단단해졌으면 드디어 완성이다. 취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장식용으로 형용사 몇 개 올려놓아도 된다.

 

   이 요리의 맛은 재료의 혼합비와 온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좋다. 생각은 충분히 숙성 발효시킨 것을 써야 한다는 것과 그늘에서 말린 감정을 써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도록!

 

   우리는 마침내 ‘시’를 배웠다.

 

 시집 <뜻밖에> 2008 애지

 

 

박제영 시인
 

                        강원도 춘천 출생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너와 당신의>

                              2004년 시집 <푸르른 소멸> 문학과경계

                              2008년 <뜻밖에> 애지

                              ‘빈터’동인 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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