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인공수정 / 유홍준

시인 최주식 2010. 1. 28. 21:59

인공수정 / 유홍준

 

 

겨드랑이까지 오는 긴 비닐장갑을 끼고 수의사가

애액 대신 비눗물을 묻히고

수의사가

어딘지 음탕하고 쓸쓸해 보이는 수의사가

소의 꼬리 밑으로

팔 하나를 전부 밀어 넣는다

소의 음부 속으로 긴 팔 하나를 모두 집어넣는다

 

나는 본다 멍청하고 슬픈 소의 눈망울과

더러운 똥 무더기와

이글거리는 태양과

꿈쩍도 않고

性器가 된 수의사의 팔 하나를 묵묵히 다 받아내는 소의 음부를

 

넓적다리와 넓적다리 사이에

가랑이 사이에

빵빵하게

공기를 집어넣은 것 같은

소의 유방에 넷, 생긴 게 꼭 무슨 고무장갑 손가락 같은 젖꼭지가 넷

 

귀때기에 플라스틱 번호표가 꽂혀져 있는

소는 이제 소끼리

접 붙지 않는다 더 굵고 더 기다란, 인간의 팔 하고만 붙는다

 

 계간 <시평> 2008. 봄호

 

 

 

 

                                                           유홍준 시인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2004년 '상가에 모인 구두들' (실천문학)
2006년 '나는, 웃는다'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