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문의 여름에세이 / 보리누름
보리서리…그 고소한 맛이란
가슴속에 청보리바람 이는 듯
보리누름은 우리 조무래기들로 하여금 해찰을 하게 했다. 여기에서의 '보리누름'이라는 말과 '해찰'이라는 말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보리누름'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의 철(계절)이라면, '해찰'이란 '일에는 정신을 두지 않고 쓸데없는 짓'만 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등교할 때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걷지만, 수업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해찰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집에 가봐야 고달픈 일을 맡기거나 심부름을 시키기 마련이어서 집에 일찍 가기가 싫은 아이들은 신작로 길에서 벗어나 보리누름이 한창인 금파백리(金波百里)의 보리밭 들녘에서 보리 서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노릿노릿한 보리를 그슬려 가지고 비벼 먹곤 했다. 젤리처럼 쫄깃쫄깃한 그 맛은 지금 생각만 해보아도 만족 이상의 것이다. 물론 그 때는 배가 고파서 무엇을 먹어도 맛이 있었지만, 그 무렵의 보리 서리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이어서 생각만 해보아도 내 가슴에서는 청보리 바람이 이는 것만 같다. 하늘은 왜 그리도 높은지, 종달새는 반 공중에서 우짖고, 아지랑이는 아질아질 배는 타라지게 고픈데도 청춘을 어깨 짜고 풋풋이 자라는 소녀들처럼, 보리는 보리끼리 풀잎은 풀잎끼리 남풍에 나부끼는 그 무질서한 질서들의 몸짓은 지금도 내 가슴에 싱그러운 바람으로 일렁이는 것만 같다.
저 경이로운 자연을 재단하는 이는 누구인가? 神? 조물주? 절대자? 우주심? 근본? 제일원인? 음양의 본체? 생명 에너지의 근원? 지평선 가득히 결실로 채워주고 또 그것을 거두게 하는 그 눈짓의 주인은 누구인가?
보리누름에/보리밭 이랑을 가면/구름 속 가물가물/볼 붉힌 소녀가 보인다.//소녀는,/눈물이 헤픈/유랑극단의 바람.//그녀의/검정 치마폭/검게 그을린 보리를 비비면,//껄끄러운 기억을 비비면,/시원한 그 눈 속에/내가 보인다.
여고생들의 매스게임은 그 대자연의 춤물결을 흉내내는 데에 불과하다. 운동장 가득히 줄지어 출렁이는 몸짓들, 그 머리카락과 머리카락과 어깨와 어깨와 허리와 허리 곡선의 인파 가득히 황금 물결로 굽이치는 초여름의 몸짓은 자연만물과 인간세계를 섭리하시는 창조주의 절묘하고도 영원한 춤과 음악의 하모니가 아니겠는가.
시인.선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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