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뜰 때 / 이기철
나는 별이 뜨는 풍경을 삼천 번은 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별이 무슨 말을 국수처럼 입에 물고 이 세상 뒤란으로 살금살금 걸어오는지를 말한 적이 없다
별이 뜨기 전에 저녁쌀을 안쳐놓고 상추 뜯으러 나간 누이에 대해 나는 쓴 일이 없다
상추 뜯어 소쿠리에 담아 돌아오는 누이의 발목에 벌레들의 울음이 거미줄처럼 감기는 것을 말한 일이 없다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며 따라오던 강아지가 옆집 강아지를 만나 어디론가 놀러 가버린 그 고요함을 말한 일이 없다
바삐 갈아 넘긴 머슴의 쟁기에 찢겨 아직도 아파하는 산그늘에 대해,
어서 가야 하는데, 노오란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벌레를 잡지 못해 가슴을 할딱이는 딱새가 제 부리로 가슴 털을 파고 있는 이른 저녁을 말한 일이 없다
곧 서성이던 풀밭들은 침묵할 것이고 나뭇잎들은 다소곳해질 것이다
부엌에는 접시들이 달그락거리며 입 닫은 딱새의 말을 대신 해줄 것이다
별이 뜨면 사방이 어두워져 그때 막내별이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문간으로 나올 거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너무 오래 써 너덜너덜해진 천 원짜리 지폐 같은 반달이 느리게 느리게 남쪽 산 위로 돋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벌들과 딱정벌레들이 둥치에서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나무를 거머쥐고 있는 것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별이 뜨면 귀뚜라미가 찢긴 쌀 포대에서 쌀 쏟아지는 소리로 운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나는 한 마디만 더 붙이려고 한다.
이것들이 다 별이 뜰 때, 별이 뜨면 생기는 일들이다
<문예중앙> 2004년 겨울호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생 / 장정자 (0) | 2010.02.02 |
---|---|
고단 孤單 / 윤병무 (0) | 2010.02.02 |
꽃섬, 가다 외 1편/ 서동인 (0) | 2010.02.02 |
봄날, 火葬을 하다 / 서동인 (0) | 2010.02.02 |
압력밥솥 / 장재원 (0) | 201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