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 정일남
거미가 허공에 그물을 살짝 걸쳐놓았다
저것이 함정이란 걸 아무도 몰랐다
어디서 나비 한 마리 날아와 걸려든다
저런 저런 저것이......
날개로 몸부림치지만 벗어날 희망은 고갈되었다
허공이 몹시 흔들린다
어디 숨어서 잠자던 긴 다리가
성큼 성큼 걸어와서
밧줄로 챙챙 묶어놓는다
한동안 하늘이 요동치다가 조용해졌다
적막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마침내 시체해부 같은 식사가 진행되고
결국 날개만 폐허처럼 남았다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풍경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달이 성큼 성큼 걸어와 걸린다
검은 다리가 이번엔 달에 옮겨 붙는다
달도 거의 반은 뜯어먹혔다
시집 <꿈의 노래> 2009.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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