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 『바람 부는 날』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김종해 시인>
1941년 부산 출생. 1963년 《자유문학》 및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데뷔.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재 문학세계사 대표, 계간 《시인세계》 발행인.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시집 『풀』,『별똥별』,『항해일지』,『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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