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택 『강남역』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 속에서 혈관을 터트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다, 포장마차가 즐비하던 자리는
고층으로 새를 부르고 검게 그을린 유리창에 잎사귀를 부르지만
저 싱싱한 다리는 아주 기분 나뿐 팔자를 만나
저녁의 숙명에 흘러가는 것을
화장품 상점에서 환한 빛으로 나오는 여자가 남자 속에서
둥글어지는 여름이다, 땀내 무럭무럭 자라 보잘 것 없음이
나의 나라라는 것임을 마침내 떠가며 알아갈 것이니
여름이란 이곳을 차지하던 그 누군가들이 부푼 육체 속에
청춘의 찜통을 채우는 일이다, 편성된 계급에 기대어
유리창 너머로 들리는 꿈의 찰칵거리는 소리에
혹독한 운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평화가, 평화가, 나의 국가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라고
저 시간은 벽 속에 도는 피에 빗대 저녁을 침묵시킨다.
< 박주택 시인 >
1959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으며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꿈의 이동건축』『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시론집『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 정서의 복원』과 평론집『반성과 성찰』『붉은 시간의 영혼』『시간의 동공』등을 펴냈으며 현대시 작품상 소월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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